근데, 그 구호가 거슬린 것 나 뿐이었음?

우리는 과연 이길 준비가 되어 있나

모이는 것에 환호했던 대중들이 이제는 '모임 이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고, 심지어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어제(오늘 새벽까지)의 지리멸렬했던 풍경과 문제점에 대해서는 허지웅씨의 글을 트랙백 해 온다. 그리고 그 문제제기에 한 마디를 덧붙이고 싶다.

어제 오후, 선발 시위대 (더 큰 규모의 시위대는 시청에서 행사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안다)는 경복궁 근처에서 청와대 진입을 시도했다. (정확하게 서머셋 팰리스 앞) 행진을 마치고 구호를 외치다가, 길을 가로막은 닭장차를 보고 정지한 시위대는 '이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각자 고민하기 시작했다. 많은 시위대가 자리에 앉았고, 광화문 쪽으로 돌아가자느니 여기를 뚫으면 바로 청와대이니 길을 뚫자느니 하는 말들이 나왔다. 대체의 분위기가 닭장차를 끌어내자는 것이었는데, 거기서 나온 구호가 몹시 거슬렸다.
이제 앞으로 나갑시다, 라는 말 다음에 어떤 남자분이 선창을 하고 여자들이 따라하기 시작한 그 구호. 그것은 바로 "남자분들 앞으로!". 아, 이 구호가 거슬린 것은 나 뿐이었나? 그 소리에 남자들은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고, 앉아있던 여자들은 엉거주춤 일어나다 제지를 당하거나 그냥 자리에 앉아 구호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이후 사건에 대해 간략하게 말하자면, 시위대는 줄을 버스에 매달고도 옥신각신이었다. 억울해서 이 대로는 못 있겠다 닭차를 끌어내자, 라고 누군가 말을 하면 우리는 비폭력해야한다 저 놈 프락치 아니냐, 라는 말들이 터져나왔고 닭차에 줄을 매달고도 그걸 잡아 당겨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말들이 난무했다. 결국 첫 번째 버스의 앞 유리창을 떼어낸 것과 가운데 버스를 잠시 흔들거리게 한 걸로 끝. 시위대는 광화문 쪽으로 귀환했다)

남.자.분.들.앞.으.로.

나는 기분이 언짢아졌다.

절망적인 외침은 새문안교회 대치 상황에서도 들렸다. 나는 전경과의 대치 상황을 보고 도움이 필요한 것 같아 몸싸움에 참가했고 (돌아보니 무의미한 몸싸움이었다, 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겠다. 실력 행사에 급급한 사람들은 이미 연행자의 석방 같은 것은 안중에 없었으니까) '여자분들 미안한데 좀 나가세요' '아 씨, 앞에 여자 있어서 제대로 못 밀겠다' 하는 소리를 듣고 기진맥진해서 교회에서 빠져 나왔다. 앞의 사람들이 몸싸움에 으쌰으쌰 구호를 붙일 때 어떤 여성분이 뒷 쪽에서 외쳤다. "남자분들 앞에 안 나가고 뭐하세요! 남자가 부끄럽지도 않아요?" 아아아. 이 폭력적인 말. 이 것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폭력적인 말이었다. 가부장적 폭력, 성적 폭력. 이런 문장들이 집단들 사이에서 큰 소리롤 말해질 때, 혹은 구호가 되어 거리를 채울 때 이게 얼마나 끔찍한 지, 나만 느끼는 건가? 혼자 느끼는 내가 이상한 건가?

폭력은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규정하는 데 있어서도 유효한 개념이다. 적의 위협에 맞서 남성이 자기 여성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 전통적으로 전쟁을 정당화하는 핵심적 이유였다. 따라서 1960년대 말 미국 대학가에서 급진 흑인 학생들이 백인 남성의 희롱에 맞서 '자기들' 여학생을 보호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식의 기사도적인 태도는 여성이라면 당연히 약하고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다는 생각 ㅡ 여성적 주체로서 스스로 대항해 싸우지 못하는 유약한 존재라를 이미지를 강화시키는 ㅡ 을 시사하기도 한다. 「직접행동」, p121-122

닭차를 끌어내고 전경과 대치하는 상황은 분명 폭력에 따라 누군가 다칠 수 있는 상황이다. 집단이 이런 상황을 맞이하게 되면 일단 약자들을 보호하는 것이 필연적이다. 하지만, 성인인 데다가 신체 건강한 나는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보호 받아야만 하는 존재인가? 이런 상황에, 앞으로 나서는 사람의 행동은 자신에게 닥칠 위험에 대해 스스로가 감수하겠다는 동의를 이미 한 것이다. 하지만 어제의 그 집단적 구호는 나를 '스스로 책임 질 수 없는 사람' 으로 만들어 버린 것 같았다.

여자들 보호해 주겠다는 데 - 힘도 없으면서 몸싸움 방해한 주제에 뭣하러 이런 글을, 하는 반응이라면 사절하겠다. 그럼 앞으로 여자들도 닥치고 앞으로 나가 싸우란 건가요? 라는 질문은 스스로에게 해보라. 당신이 생각했을 때, 당신에게 닥쳐올 위험에 대해 감수할 자신이 있다면- 그리고 집회에서 공권력에 대한 무력 행사는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상황적으로 그게 옳다면, 당신은 몸싸움과 버스를 끌어내는 일 등에 동참하라. 당신이 생각했을 때, 비폭력은 대중들의 집단 행동에 있어 중요한 원칙이고 비폭력 만이 진정한 승리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하라. 다만 거리에서 우리 모두가 해야하는 일은, 우리 스스로를 주체로 여기고 남들도 똑같이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는 것이다.

by filming | 2008/06/08 00:05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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